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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랏말싸미, "역사왜곡" vs "영화일뿐"

by Thinknote 2022. 10.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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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화 <나랏말씨미> 스토리

영화 <나랏말싸미>는 조선의 위대한 군주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 '나랏말싸미'는 세종대왕이 아니라 신미라는 스님이 한글을 창제했다는 역사 왜곡을 펼치고 있습니다. 오늘은 어떤 논리로 인해 신민 대사가 한글을 창제했다고 하는지 그 역사 왜곡의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신미 대사는 누구이길래 그가 한글을 창제했다는 이런 주장까지 나올까? 신미 대사는 조선 초기의 승리로 본명은 김수성입니다. 신미 대사가 한글을 창제했다는 주장과 근거는 바로 한 권의 책 때문입니다. 불교 고서 '원각선종석보'입니다. '원각선종석보'는 1435년, 신미 대사에 의해 출간되었는데 이 불서에 '한글'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책의 출간 연도는 훈민정음 창제 시기보다 8년이나 앞섭니다. 그래서 이 책을 두고 나온 주장이 시민 대사가 한글을 먼저 창제했고 세종대왕은 이를 참고하여 반포했다입니다. 신미 대사가 한글 창제설에 거론되는 또 다른 이유는 신미 대사가 세종에게 이와 같은 시호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우국이세' 나라를 위하고 백성을 이롭게 했다는 건데 이 시호를 두고 소수의 학자들은 "한글 창제의 공로가 신미 대사에게 있다."라며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신미 대사가 범어에 능통했는데 한글이 이 범어를 모방하여 창조했다고 소수 학자가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범어는 인도의 고전으로 자음과 모음이 있는 언어입니다. 그리고 이 음운체계를 따라서 한글이 만들어졌다고 소수 학자가 주장을 합니다. 신미 대사의 본적 영산 김 씨의 족보에도 신미 대사가 집현전 학사였다고 나옵니다. 신미 대사가 역사에서 지워진 이유는 숭유억불의 정책에 따라 사대부들이 신미 대사를 달갑게 여기지 않았으며 세종이 신미 대사를 보호하기 위해서 '우국이세'라는 시호만 내리고 그를 기록에서 지움으로써 보호했다는 겁니다. 이런 주장을 근거로 만들어진 작품이 소설 <천강에 비친 달> 영화 < 나랏말싸미>입니다. 

2. 그럼 진짜로 신미대사가 한글을 창제한 걸까?

일단 대종언어연구소 박대종 소장에 따르면 '원각선정석보'는 '위작'입니다. 즉, 가짜입니다. 책의 서체나 책의 제본이 15세기 조선의 서체 및 재본 방법과 일치하지 않으며 내용 또한 조선 초기의 언어가 아닌 현대의 한국어가 들어가 있는 등 오류가 9가지나 있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이 책은 조선이 아니라 대한민국에서 만들어진 짝퉁이라는 것입니다. 그 외에도 신미 대사가 집현전 학사였다는 영산 김씨의 족보 사료도 있지만 족보라는 게 워낙 과장된 게 많아서 신뢰도가 낮으면 훈민정음 창제 이후 불교 서적이 활발히 간행되고 세종이 말년에 불교로 귀의하고 세종의 아들 세조가 불교중흥정책을 펼친 것도 신미 대사의 영향력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이것 또한 아전인수 격입니다. 훈민정음이 창제된 이후 불경을 훈민정음으로 언해하는 과정에서 공을 세워서 시호를 받았을 뿐 직접적인 연관성이 하나도 증명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신미 대사의 범어 모방설도 수많은 문자 모방설 중 하나일 뿐입니다. 범어 모방설, 티베트 문자 모방설, 당국 조선의 가림토 문자 모방설, 송나라 정초의 <육서략> 모방설, 원나라 파스파 문자 모방설, 심지어 일본 신대문자 모방설 등 각 모방설은 통일되지도 않고 잡다하게 난무하고 있고 심지어 조선 최고의 음악가 박연이 훈민정음 창제를 했다는 주장도 있지만 학계에서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있습니다. 

3. 그럼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했다는 증거는 무엇이 있을까?

솔직히 너무 많습니다. 말하기도 귀찮은 정도로 1443년 12월 세종 25년 실록에 "임금이 직접 언문이 28자를 만들었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신숙주의 문집 <보한채집>에는 "왕이 28자를 만들고 언문이라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한글이 반포되고 3년간 집현전 학자들은 훈민정음해례본을 만드는 데 동원되었으며 해례본과 서문에도 "전하창제"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중국의 음을 모두 한글로 옮겨 적은 <동국정원>의 서문에서도 신숙주는 "성과 음 하나하나를 정함에 모두 상감(세종대왕)의 재가를 받았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성삼문의 <직해동자습>에서도 한글을 만든 것은 세종이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에 따르면 조선팔도 최고의 학자들만 모인 집현전에서 부제학을 맡은 최만리도 세종과의 언어학 논쟁에서 말도 못 꺼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세종대왕은 경연에서도 대적할 자가 없는 조선 최고의 언어학자였습니다. 숭유억불 정책이라서 신미 대사가 배제되었다는 추측 또한 수용되기 어려운 이유가 고금운희거요를 번역하는 <운희번역>에도 "세자와 수양대군, 안평대군의 일을 감독했다"라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사대부의 정사에서 감춰져 기록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세종의 한글 창제를 감췄으면 감췄지, 신미 대사를 숨길 이유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왜 이런 괴이한 주장이 나온 걸까? "독창적으로 문자를 만들 리가 없다!"라는 열등한 전제가 우선 나와야 할 것 같습니다. "야, 독창적으로 어떻게 문자를 만드냐?" 그렇다면 J.R.R 톨긴이이 직접 만든 인공어, '퀘냐'와 '신다린'도 세계적으로 의심받아야 하고 이 논리라면 신미 대사도 같이 의심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전제에는 개인 혹은 집단의 이익을 위한 주목을 받고 싶은 한탕 욕심도 내재하여 있습니다.

맞습니다. 모든 역사의 100%는 없습니다. 하지만 99%의 사실을 두고 1%의 흥미로운 음모론으로 소비자의 돈을 노리는 행위는 배척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 1%의 가능성으로 수많은 사람이 고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5.18입니다. 한 사람의 거짓된 주장으로 일어난 1%의 의심과 음모론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고통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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