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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반도, 참혹한 감상평

by Thinknote 2022. 10.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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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입부

천만 관객을 돌파했던 <부산행>으로부터 4년이 흐른 2020년 많은 분이 학수고대하셨던 반도를 소개 하겠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조금 먼저 개봉했던 좀비 영화 <#살아있다>가 워낙 실망스러웠기 때문에 <반도>야말로 코로나로 침체에 빠진 극장가를 살려줄 메시아 같은 존재가 되길 바랐었습니다. 그런데 역시나 개봉 전부터 불길했던 예감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적중하고 말았습니다. 이쯤 되면 코로나도 코로나지만 이제 관객 수 등으로 한국 영화의 규모를 따지는 것에서 벗어나 질적인 성장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부산행>과 비교해서 말씀드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부산행이 달리는 기차를 무대로 하는반면, 반도는 홍콩과 서울 등을 누비는 만큼 두 영화는 극명하게 다른 스타일을 추구합니다. 예컨대 부산행이 기본적인 좀비 영화의 형태에 비교적 충실했다면, 반도는 좀비들이 우리나라를 집어삼킨 이후에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다 보니 종말론적인 세계관을 바탕으로 액션을 한층 강화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전편과 달라진 배경에 맞추고 차별화를 둘 수 있다는 것에서 연상호 감독의 이런 선택을 지지했던 쪽입니다. 아니하게 과거의 성공을 답습하는 것보다는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걸 응원하고 싶었죠. 당연히 관건은 각본과 연출이 얼마나 성공적으로 실행하느냐에 달렸다면 정말 안타깝게도 반도는 바로 이 지점에서 여지없이 무너집니다. 기대치가 낮았기 때문인지 정석에게 내적인 사연을 안겨주는 프롤로그를 포함한 초반부는 꽤 좋았습니다. 적어도 막무가내로 내달리다가 자빠져서 졸전을 초래한 <#살아있다>에 비하면 캐릭터 구축에 필요한 공과 시간을 할애하고 있어서 의외로 예감이 괜찮았는데 인천을 거쳐 서울에 당도한 직후부터는 줌을 필두로 한 네 명의 캐릭터가 차례대로 합류하면서 영화가 뿌리째 흔들립니다. 단순히 정석에게 일행이 생겼다는 걸 문제 삼는 게 아니라 이들이 등장하면서 영화의 시점에 간섭하고 덩달아 캐릭터의 감정선마저 흐려지면서 모든 게 분산된다는 걸 탓하는 겁니다. 그 결과 반도는 정석이라는 캐릭터의 기초 공사를 잘하고도 정작 본론에 들어가면 뒷전으로 밀어내버려서 관객들이 감정을 이입할 대상을 잃은 채 헤매고 이야기의 응집력은 대거 하락합니다.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는데 저는 지금 남성인 정석을 약화한 대신 여성 캐릭터 삼인방을 앞세운 것에 대한 반감을 갖고 비판하는 게 아닙니다. 부산행에서는 여성과 아이가 보호받는 약자의 포지션이었던 데 반해 반도에서는 주체적으로 삶을 개척하는 당당한 캐릭터로 그리고 싶었다면 얼마든지 이해합니다. 더욱이 지난주에 혹평했던 <그레텔과 헨젤>처럼 원작을 훼손하다시피 한 불리의 영화도 아니니 믿거나 말거나 제가 맹목적으로 비판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런데도 제가 이 점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건 이럴 바에는 민정 등을 조연으로 가미하지 말고 애초에 정석을 뺀 나머지 여성 캐릭터들이 주도하도록 두는 게 훨씬 나았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부산행의 경우는 한정된 공간을 배경으로 삼아서 집약적이기도 했지만, 영화의 시점이자 이야기의 중심에 어디까지나 석우가 있었다는 걸 주목해야 합니다. 물론 부산행에도 석우와 함께 기차 속의 좀비를 해치우는 조력자인 영국과 상화가 있지만 세 사람에게는 일관적으로 공통된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결코 산만하거나 번잡하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반도는 시작과 끝에 정석이 있을지언정 가장 중요한 과정에서 주인공이 주인공다운 역할을 못 하고 주객전도가 일어나는 바람에 강동원 씨가 제아무리 잘생겼다고 한들 도통 캐릭터의 매력이 없습니다. 적진에 침투하는 것마저 이래저래 민정이 앞장설 수밖에 없게 되는 데다가 거기서 두 사람이 각기 부닥치게 될 난관까지 다르다는 걸 관객들은 미리 알고 있기 때문에 어느 한쪽에 대한 관심을 버리지 않는 다음에는 영화에 몰입할 여지가 좀처럼 주어지지 않습니다. 차라리 민정과 정석이 다른 목적을 가지되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전략적으로 제휴를 맺는다고 했으면 좋았을 것을 굳이 아무런 효과도 얻지 못하는 장치를 둔 건 명백한 패착입니다.

 

2. 중반부

설상가상 부산행과 달리 반도는 야심 차게 선택한 배경조차 제대로 살리지 못합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다시피 두 영화의 가장 큰 차이는 배경에 따른 장르의 변화입니다. 이를테면 <반도>는 <워킹데드>처럼 좀비의 창궐로 말미암아 이성과 인간의 따위는 사치가 된 세상에서 벌어지는 종말론적인 영화입니다. <워킹데드>를 보신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이런 장르에서 좀비는 직접적인 위협이 되기보다는 참혹한 생태계를 조성하고 인간성을 시험하기 위한 도구로 등장하기 마련입니다. 대신에 여러 캐릭터가 그 인간성의 양극단에 서서 다투고 갈등하는 게 주가 되는데 반도는 마치 정석에게 그랬던 것처럼 배경도 기초 공사만 잘해놓은 것에서 그칩니다. 이 말인즉슨 연기력에서 꿇릴 게 없는 김민재 씨와 구교환 씨를 캐스팅하고도 선역에 이어 악역의 매력을 온전히 발산하는 것 역시 실패했다는 뜻입니다.
관객들이 느끼게 될 불쾌함이나 거부감을 의식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제가 워킹데드로 단련이 돼서 그런 건지 모르겠으나 두 사람이 있는 631부대는 좀비로 인해 디스토피아로 전락한 세상의 광기를 담아내 보여주기에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나약한 생존자들을 잡아다가 즐기는 유의만 하더라도 피상적으로 묘사하는 선에서 그치는 탓에 아주 잠깐의 소모적인 볼거리에 지나지 않아 이 영화가 믿을 구석은 단 하나도 남아 있지 않게 됩니다. 그 공백을 메우려고 시도하는 게 바로 마케팅에서 밀고 있는 모양인 자동차 추격전 등의 액션인데 사실 액션 자체는 볼만합니다. 비록 할리우드의 그것에 비밀 정도는 아니지만 나름 다양한 짜임새를 보여주면서 알차게 꾸몄으면서도 세트에서 촬영한 티가 역력하고 CG의 조악한 퀄리티까지 겹쳐서 지속해서 몰입하는 걸 방해합니다. 예고편을 봤을 때부터 거슬렸던 게 본편에선 개선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할리우드에 <만달로리안>이 도입했던 혁신적인 시각 효과를 바라는 건 무리라는 걸 십분 이해하더라도 보는데 크게 거슬릴 정도는 아니어야 할 텐데 반도는 무슨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뒤에 세워 놓는 사진을 절로 떠올리게 하는 바람에 지적을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되면 결국 부산행의 기차에서 벗어나 더 넓은 무대로 나아간 게 치명적인 도구로 작용한 꼴이라고 생각합니다.

3. 후반부

이 외에도 몇 가지가 더 있지만 정말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살아있다>로 예방주사를 맞은 덕분에 무덤덤하게나마 그럭저럭 인내하면서 볼 수 있긴 했습니다. 일단 터무니없는 개연성으로 일관하는 영화는 아니라는 걸로 위안 삼고 있습니다. 그랬었는데 끝내는 결말 부에 이르러 마지막까지 제가 간직하고 있던 한 가닥의 자비심마저 산산조각이 났고 그 이유는 실소가 절로 나오면서 가당치도 않게 유발하는 빌어먹을 신파입니다. 저로서는 참 희한했던 게 결말 부 전까지는 부산행보다 한결 양호해서 그나마 몇 안 되는 장점으로 삼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맙소사. 그런데 아직 안심하기는 이르다는 듯이 그때까지 참고 있었던 걸 결말 부에서 연속으로 다 터뜨립니다. 왜냐하면 <반도>가 신파를 끌어내는 솜씨에 비하면 부산행은 거의 뭐 걸작의 경지입니다. 좀 심하게 말씀드리면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이자 주제를 품고 있는 장면임에도 불구하고 쌍욕이 나옵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현재의 세태를 반영한 것으로 볼 수도 있는 건 의도적으로 기피하고 있는 것 같아서 부산행보다 지나치게 가벼웠다는 걸 부정할 수 없는 것도 아쉬웠던 영화가, 유일하게 전달하려고 했던 메시지를 신파로 어이없게 망치는 걸 보니까 쌍욕을 안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마 여러분도 직접 보시면 공감하실 것 같은데 그 "장면"은 <#살아있다> 못지않게 어느 모로 봐도 눈감아줄 수 없을 정도로 개연성과 설득력을 상실했습니다. 가뜩이나 코로나로 아사 직전에 몰렸다고 해도 과장이 아닐 극장가에 <반도>가 어떻게 해서든 보탬이 되길 바랐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닌 걸 맞는다고 할 수 없는 노릇이니 참 안타깝습니다. 미국에서는 캘리포니아가 며칠 전에 극장을 다시 폐쇄하면서 <테넷>의 개봉이 또 한 번 연기될 확률이 높아 상대적으로 사정이 나온 우리나라에서는 이 틈에 한국 영화가 무주공산을 차지할 좋은 기횐데 실망을 거듭하다 보니 과연 지금 한국 영화를 위협하고 있는 게 정년 코로나인지 의문을 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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